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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랄라포 Namibia

전통치료사 실비아의 코끼리똥

 

 

 

예순이나 일흔쯤 되었을까. 낡은 옷차림에 얼굴과 손 가득 먼지가 앉은 여인이 우리를 맞는다. 실비아 요하네스. 이 마을의 전통치료사다. 나미비아에 있으면서 나는 틈틈이 나미비안 전통치료사들을 만나 취재했다. 현지 활동가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일이다.

 

나를 보자 실비아는 대뜸 온몸이 아프다며, 외국에서 가져온 약이 없느냐며 묻는다. 때로 마을에서 할머니들을 만나면, 그들은 어김없이 아픈 몸, 아픈 눈을 치료할 약이 없느냐고 묻기 일쑤다. 전통치료사라는 그녀 또한 예외는 아니다. 어깨며 팔을 주물러대며 아프다는 시늉을 해 보이는 그녀. 그러나 내가 한국에서 가져온 약이라곤 급체했을 때 먹는 한약 몇 십 환이 전부. 할 말이 없다. 실비아를 실망시키고, 오두막 옆 그늘에 마주앉아 이야기를 시작한다.

 

 

 

 

ⓒ photo by angelfish, Oshakati, Namibia, 2008

 

함께 치료사 일을 하던 언니가 몇 년 전 세상을 뜨고, 지금은 혼자 일하고 있다고 했다. 나이를 물으니 기억하지 못한다며 주섬주섬 일어나 자리를 뜬다. 잠시 후 돌아온 그녀의 손엔 아이디 카드가 있다. 1928년생. 믿을 수 없는 나이, 팔십 세. 아버지가 주술 치료사였고, 아버지로부터 치료법을 전수받았다고 했다. 그녀 또한 지금 아들에게 치료법을 전수하고 있다며 아들을 부른다. 검은 점퍼를 입은 순박해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스르르 걸어온다. 계면쩍은 웃음을 지으며 난생 처음 본다는 듯 나를 잠시 관찰하더니 이내 자리를 뜬다.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는 실비아의 며느리와 손녀 사라, 둘째 손녀인 두세 살쯤 되었을 붉은 털옷을 입은 여자 아이가 함께다. 아이의 손과 입에 모래가 가득 묻었다. 동그란 눈을 내게 들이대며 꿈벅거리는 모양이 귀엽다.

 

일주일에 여섯에서 열 명 사이의 환자들이 온다고 했다. 주로 팔이나 다리가 마비되어 거동이 어려운 이들. 뇌경색쯤 되는 병을 갑자기 얻은 주민들이 그녀를 찾는 것이다. 팔다리 마비나 입이 돌아간 이들을 제외한, 다른 질병으로 그녀를 찾는 이들을 그녀는 근처 소도시인 오샤카티의 병원으로 보낸다고 했다. 오샤카티 병원 또한 뇌경색으로 인한 마비 증상으로 오래 고생하는 이들을 그녀에게 보낸다. 서양의 의술과 아프리카 전통 의술의 협업인 셈.

 

마비 증세를 갖고 찾아오는 이들을 그녀는 수박처럼 생긴, 오이 맛이 나는 나미비안 전통 채소 ‘오마탕가’ 씨앗으로 만든 오일로 치료한다고 했다. 마비된 팔이나 다리에 오일을 바르고 정성스레 맛사지를 한단다. 삼사 일, 길게는 2주 이상 이 집에 머물며 치료를 받는 환자들에게 매일 오일을 바르고 맛사지를 하고 스트레칭 등 가벼운 운동을 하도록 이끈다. 간혹 뇌에까지 마비증상이 올라가 심각한 증상을 보이는 이들에게는 코끼리의 똥을 말려 태워 그 연기를 맡도록 한다. 그 연기를 흡입하면 탁해졌던 뇌가 다시 맑아진단다. 잠시 옆 오두막으로 들어간 실비아가 작은 나무그릇에 밝은 황토빛 지푸라기 한 뭉텅이를 담아 나온다. 치료용으로 쓰인다는 코끼리의 똥이다. 코끼리의 똥이 왜 효과가 있냐는 질문에 코끼리가 온갖 종류의 나무와 잎들을 먹기 때문이라고 한다. 환자를 직접 치료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하자 마침 어제까지 세 명의 환자가 치료실에 기거하고 있었으나 이른 아침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단다. 아쉽다.

 

온 가족의 환대에 마땅히 보답할 길이 없어 가족사진을 찍어 인쇄해 가져다주겠다고 하니, 마당에서 가장 빛나는 나무 아래 가족들이 모였다. 실비아와 중년의 며느리, 숙녀티가 완연한 손녀 사라와 그녀보다 두세 살 어려 보이는 손자 필립보스. 그는 그새 말끔하게 옷까지 갈아입고 나왔다. 너다섯 살쯤 고만고만해 보이는 아이들 셋, 그리고 가장 어린 붉은 털옷의 막내까지. 실비아의 뒤를 이을 중년의 아들은 끝내 다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장난까지 쳐가며 밝은 웃음을 짓는 실비아의 가족.

 

집에서 한참 멀어진 후에도 가족들의 왁자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낯선 손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리라. 웃음소리를 뒤로 한 채, 한참을 걸은 후에야 떠오른 한 생각. 한 줌이라도 얻어올 것을, 거처로 돌아가 내 작은 오두막에 그 향을 피우면, 야생 코끼리의 순수한 영혼이 내 온몸을 돌아 머리가 순하게 맑아지고 지친 육신이 가벼워질 수도 있었을 것을, 아쉽다, 실비아의 코끼리 똥!

 

ⓒ photo by angelfish, Oshakati, Namibia,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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