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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랄라포 Namibia

청년 도미니크의 꿈

 

넓은 평원, 하얀 모랫길을 걷는다. 현지 활동가 크리스토피나와 나란히 걷는 길. 뜨거운 햇빛 탓에 오른쪽 뺨이 뜨겁다. 카메라와 콘돔박스, 점심으로 준비한 빵, 사과, 물이 든 가방이 무거워 자꾸만 어깨가 쳐진다.

 

한 시간 반쯤 걸었을까. 띄엄띄엄 집들이 보인다. 오두막 흙바닥에 앉아 중년의 여인 셀마는 아프리카 사과 껍질을 투박한 나무토막으로 벗겨내고 있다. 언젠가 한 소년이 나무에서 따 준 아프리카 사과의 맛을 기억한다. 몹시 딱딱해서 입에 넣고 아무리 씹어도 단물이 나오지 않던, 텁텁하고 건조하던 그 맛. 셀마에게 무엇에 쓸 것이냐고 묻자 맥주를 빚을 거란다.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은 그녀는 지금 두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역시 에이즈 양성인인 남편은 나미비아의 수도 빈트후크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번 검사 결과 씨디포 쎌 치수가 급격히 낮아졌다는 소식을 전하자, 길 건너편에 사는 시어머니와의 갈등이 주 원인일 거라고 그녀는 말한다. 원인이 그것뿐이겠는가. 턱없이 부족한 영양 상태도 큰몫 했겠지. ‘오시쿤두’가 가득 담긴 플라스틱 컵이 눈에 띈다. 나미비아인들은 하루종일 때없이 오시쿤두를 마시며, 식사로는 턱없이 모자란 열량을 채운다. 마항고 열매로 만든 일종의 곡주, 영락없는 우리나라 막걸리 맛이다. 마항고 찌꺼기와 날벌레들이 표면에 둥둥 떠다니는 오시쿤두를 셀마가 입으로 후후 불어가며 몇 모금 마시더니 내게도 권한다. 나도 셀마처럼 입 바람 불어가며 몇 모금. 속이 든든해진다.

 

     ⓒ photo by angelfish, Oshakati, Namibia, 2008

 

‘코커샵’에서 오시쿤두를 나눠 마시며 친해진 도니미크는 깡마른 몸에 햇살처럼 환한 웃음을 가진 열일곱 청년이다. ‘코커샵’은 마을 초입마다 자리한, 우리 옛 점방 같은 곳. 양초, 성냥, 빨랫비누 등 생필품과 과자나 사탕 등 주전부리, 시원한 음료, 맥주 등을 판다. 도미니크는 코커샵에서 주로 오시쿤두를 마시며 시간을 보낸다. 돈이 좀 있는 날은 시원한 맥주를 몇 병씩 사 마시며 호기를 부리기도 한다. 축구선수 박지성을 알고 있는 그가 어느 날, 내가 그와 같은 성을 가진 한국인이라고 말하자 꽤 진지한 얼굴로 물었더랬다. “그러면 당신, 박지성의 여동생이야?”

 

코커샵이 아닌, 너른 마항고 밭에서 그를 만났다.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평소보다 더 반갑다. “어, 매일 술이나 마시는 줄 알았더니 오늘은 일을 하네! 난 네가 자랑스러워!” 장난스레 말을 거니, 하얀 치아를 모두 드러내 보이며 그가 웃는다. 도미니크는 수도 빈트후크로 가서 일하는 것이 소원이다. 독일에 이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점령에서 벗어나 1990년에야 겨우 독립 국가를 이룬 나미비아는 공산품의 80퍼센트 이상을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어서 자국 내 2차 산업이 전무하다시피 하다. 도시로 나가고 싶은 청년들은 마을마다 차고 넘치지만, 그들 스스로 도시에 나가 일할 준비가 미비할 뿐더러 그들을 위한 일자리도 턱없이 부족하다. 도미니크는 운전을 배워 나미비아의 소도시들을 잇는 대형 버스를 몰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언젠가 사람들을 가득 태운 버스를 운전해 빈트후크에 가겠다고 한다. 면허를 따기 위해 차근차근 돈을 모으고 있다고도 했다.

 

점심으로 싸온 빵과 사과 몇 알을 꺼내 나눈다. 사과를 한 입 베어문 도미니크가 기분 좋게 말한다. “어느 날, 네가 다시 나미비아를 찾으면 빈트후크에서 여기, 오샤카티까지 내가 너를 데려다 줄게. 다시 만난 기념으로 차비는 공짜!”

 

나와의 약속, 그리고 도미니크 자신과의 약속.

 

 

ⓒ photo by angelfish, Oshakati, Namibia,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