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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랄라포 Namibia

왈랄라포 나미비아

왈랄라포* 나미비아

아프리카 대륙에서 다섯번째로 에이즈 감염률이 높은 나라 나미비아 북서부의 소도시 오사카티에서 나는 2007년 겨울과 이듬해 봄, 두 계절을 살았다. 짐바브웨와 덴마크에 본부를 두고 아프리카와 인도, 중국에서 에이즈 예방과 ‘Child Aid' 활동을 하고 있는 국제구호단체 ‘휴머나(The International Humana People to People Movement)’에서 일하고 있던 나는 나미비아에 파견되어 에이즈 예방 활동인 ‘TCE(Total Control of Epidemic)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

TCE 프로젝트의 중심에는 현지 활동가들이 있다. 삼 년의 프로젝트 기간 동안 끊임없이 교육을 받으며 그들은 완벽한 에이즈 전문 상담가가 된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본부가 다른 지역으로 거처를 옮긴 후에도 이들은 각자의 마을에서 이웃을 돌보며 활동을 계속해 나간다. 이들을 지역 운동가로 키우는 데 프로젝트의 가장 큰 목적이 있는 셈이다.

일주일의 다섯 날을, 이른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나는 그들 현지 활동가들과 함께 걸어 사람들을 만났다. 뜨거운 햇살 아래 발이 푹푹 빠지는 마른 모래땅을 종일 걸어야 겨우 서너 집을 방문할 수 있다. 모래 위에 지어 올린 서너 채의 오두막을 울타리로 둘러 집을 이룬 그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오래된 나무처럼 삐쩍 마른 몸에 남루한 옷을 걸친 얼굴 검은 그들이 나를 향해 웃으며 인사한다. ‘왈랄라포’.

유난히 하얀 치아, 빛나는 큰 눈, 순한 눈으로 느릿느릿 걷는 나미비아 당나귀를 닮은 사람들. 에이즈가 감기처럼 번진 땅, 마른 모래밭에 마항고**를 키우며 거친 자연 속에서 삶을 견뎌가는 그들을 추억한다.

* 나미비아 인구의 약 50퍼센트를 차지하는 오밤보족의 인사.

** 열매를 털어 갈아낸 가루로 ‘오시피마’라고 불리는 죽을 쒀 먹는다. 나미비안들의 주식.


ⓒ photo by angelfish, oshakati, Namibia, 2008


춤추는 아이들

12월 1일, 세계 에이즈의 날. 세 명의 현지 활동가들이 각자의 마을에서 운영 중인‘Orphan Group(에이즈로 인해 양쪽 혹은 한쪽 부모를 잃은 아이들의 모임)' 아이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먼 길을 걸어 나무 아래 모인 아이들. 뜨거운 햇살을 피해 앉은 그늘은 사람에게도 가축에게도 알맞은 쉼터다. 어색한 몸짓으로 슬그머니 다가온 아이들이 내 머리칼과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제 것처럼 곱슬거리지 않고 곧게 뻗어 내린 머리칼과 하얀 얼굴을 신기한 듯 관찰하다 조심스레 손을 치켜든다. 아이들 하는 모양을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으니, 드디어 그 작고 검은 손들이 내 머리를 둘러싼다. 머리와 뺨을 연신 손으로 쓸어내리며 자기들끼리, 제 언어로 지껄이며 깔깔거린다. 명랑한 웃음. 몇몇 아이들은 머리칼을 하나씩 몰래 뽑아 도망을 치기도 한다. 따끔하다. 금세 사라지는 찰나의 아픔. 통계상 나미비아인 열 명 중 네 명은 에이즈 양성인이다. 성 접촉을 통한 감염 확률이 가장 높고, 남성보다 여성 감염자의 수가 훨씬 많다. 엄마로부터 바이러스를 물려받아 태어나는 아이들이 늘어나는 것은 그래서이다. 자신이 가진 가장 깨끗한 옷을 차려입고 온 아이들이 제 부족의 전통 리듬에 맞춰 춤을 춘다. 온몸을 자유자재로 놀리며 있는 힘껏 땅을 치는 맨발의 아이들, 아이들로부터 품어져 나오는 그 힘찬 기운이 땅을 두드리고 하늘을 깨운다.


청년 도미니크의 꿈

우기가 시작되기 직전인 12월과 1월 사이, 사람들은 모래와 같은 시간을 움켜쥐고 땅을 일군다. 몇 번이고 뒤집어엎은 모래땅 위에 마항고 씨앗을 뿌리고, 또다시 모래와 같은 날들을 무던히 기다리는 사람들. 소와 닭 등 가축을 키우고, 우기가 찾아오면 개구리를 잡고 물고기를 낚아 올려 주식으로 삼는다. 마을 앞 간이주점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는 도미니크는 깡마른 몸에 햇살처럼 환한 웃음을 가진 열일곱 청년이다. 축구선수 박지성을 알고 있는 그가 내가 그와 같은 성을 가진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꽤 진지하게 묻는다. ‘그러면 당신, 박지성의 여동생이야?’

너른 마항고 밭에서 일하고 있는 그를 만나 반갑다. 슬쩍 장난을 건다. ‘어, 매일 술이나 마시는 줄 알았더니 오늘은 일을 하네! 난 네가 자랑스러워!’ 하얀 치아를 모두 드러내 보이며 그가 웃는다. 도미니크는 소도시로 가서 일을 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독일에 이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점령에서 벗어나 1990년에야 겨우 독립 국가를 이룬 나미비아는 자국 내 2차 산업이 전무하다시피 하다. 생활필수품 등 공산품의 80퍼센트 이상을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부터 거의 전량 수입하고 있어 특히 젊은이들을 위한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하다. 도시로 나가고 싶은 청년들은 마을마다 차고 넘치지만 그들 스스로 도시에 나가 일할 준비가 미비할 뿐더러 그들을 위한 일자리도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다. 도미니크는 운전을 배워 나미비아의 소도시들을 잇는 차를 몰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언젠가는 사람들을 가득 태운 대형 버스를 운전해 나미비아의 수도 빈트후크에 가겠다고 한다. 면허를 따기 위해 차근차근 돈을 모으고 있다고도 했다.

“어느 날, 네가 다시 나미비아를 찾으면 빈트후크에서 여기, 오사카티까지 내가 너를 데려다 줄게. 다시 만난 기념으로 차비는 공짜!” 나와의 약속, 그리고 도미니크 자신과의 약속.



ⓒ photo by angelfish, oshakati, Namibia, 2008


소년의 침묵

ⓒ photo by angelfish, oshakati, Namibia, 2008

소년은 좀체 입을 열지 않았다. 침묵이 일상처럼 몸에 밴 얼굴. 알아들을 수 없는 오밤보족의 언어가 소년이 생명처럼 아끼는 라디오를 통해 암호처럼 흘러나온다. 소년과 세상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 라디오를 만지작거리며 소년은 멀리 둔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망연한 눈빛이 슬프다. 소년 옆에 조용히 앉아 그의 시선을 쫓는다. 한가로이 풀을 뜯는 염소떼와 당나귀들.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지평선, 소년은 그 너머의 세상을 꿈꾸는 있는 것일까.

소년은 오래 전 부모를 병으로 잃고 할머니와 어린 두 동생과 함께 산다고 했다. 마을의 염소들을 모아 풀을 먹이는 것이 소년이 하루 종일 하는 일이다. 뜨거운 가슴을 끌어안고 삶을 견디던 소년은 어느 날, 단 몇 푼 손에 쥐고 마을을 떠날 것이다. 그때 소년이 없는 들판에서 염소들도 길을 잃고 헤매일까. 낯선 도시에 도착한 그 첫 밤은 얼마나 두려울까. 두려움을 침묵으로 삼키며 소년은 또다시 그곳에서 새로운 날들을 견딜 것이다. 우리들 누구에게든 삶은 그렇듯 끊임없는 견딤의 연속이 아닌가.

ⓒ photo by angelfish, oshakati, Namibia,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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